들꽃소리
숲 속을 밝히는 남빛 등불 - 금강초롱꽃 본문
한때 화악산은 민간인통제구역이었다. 특히 정상부는 통제가 심했다. 그것이 풀리면서 산 정상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화악산에는 특별한 야생화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금강초롱꽃’이다.
개방이 됐지만, 화악산은 여전히 길이 험하다. 그 길을 조심스럽게 올라가다 보면 길 옆 절개지에서 금강초롱꽃을 만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특별한 야생화는 자생지를 소개하지 않지만, 이곳은 이미 너무 유명한 곳이 되어버렸다. 그냥 찾아가서 보고, 사진이나 촬영하고 고이 오는 그런 곳이 됐으면 싶다.
각설하고, 최근 두 해는 게으른 탓에 먼 산을 거의 가보지 않았지만, 그 이전에는 연거푸 이곳을 방문했었다. 옛 군시절 생각도 나고, 나름 운치도 있으니 방문 자체가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반가운 예쁜이들이 많은 곳이고 보니 즐거움은 배가 됐다.
금강초롱꽃은 보랏빛을 띠는 짙은 남색을 하고 있다. 그래서 보기에 따라 그 색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할 때면 색 재현에 큰 무리가 없지만,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 이 색의 표현이 가장 어렵다. 대부분 길옆의 절개지나, 숲과의 경계 부근에서 만날 수 있어 경치와 어우러지는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모델도 예쁜데 배경까지 맞춰주는 착한 녀석인 셈이다.
눈여겨 볼 것은 금강초롱꽃의 속명이다. 하나부사야(Hanabusaya). 그냥 들어도 일본어다. 여기에 대해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이 쓴 글이 있다. 다음은 그가 지난 2007년 한 신문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조선총독부의 촉탁 자격으로 한반도의 식물을 연구하던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가 발견하여,1909년에 신종으로 발표했다. 처음에는 기존의 심판드라(Sympandra)속(屬)에 속하는 새로운 식물로 발표하였지만 다시 곰곰이 관찰한 결과, 이 식물은 심판드라속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발견된 어떤 속의 식물과도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잎의 달리는 모양이 초롱꽃속이나 잔대속 식물들과도 달랐다. 그래서 2년 뒤에 금강초롱꽃이 속하는 새로운 속인 금강초롱꽃속을 다시 만들어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때 문제가 생긴다. 식물의 특징을 반영하여 새로운 라틴어 속명을 붙였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여기에 정치적인 의도와 사사로운 감정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초대 조선총독인 하나부사를 기리는 의미로 금강초롱꽃속의 새로운 속명, 하나부사야(Hanabusaya)로 지은 것이다.>
어쨌거나 금강초롱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산종이다.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금강’이라는 이름을 받았고, 다른 초롱꽃과 마찬가지로 청사초롱을 닮았다고 해서 ‘초롱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우리 꽃의 이름조차 우리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현실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를 수치스럽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각오를 다지는 각성제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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