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길을 잃다
길을 잃다
제법 오래전 이야기다. 안면도로 새우란 촬영을 떠났다. 산허리 곳곳에 옹벽이 설치되어 있는 높지 않은 야산이었다. 넓게 닦아 놓은 공터에 차를 세우고 좁은 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새우란 몇 촉과 금난초 몇 촉, 은난초도 눈에 들어왔다. 남쪽에서나 만날 수 있는 옥녀꽃대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산 속에서 보냈다.
풍성한 수확을 얻은 우리는 장소를 옮기기 위해 다시 산을 내려왔다. 길이라고 해야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하나, 그리고 좌우로 갈라진 길 두어 개가 전부였다. 만족감에 가득 찬 하산길은 잠시 후 당황스러움으로 변했다. 길 끝에 높은 옹벽이 떡하니 나타났다. 뛰어내리기에는 높이가 상당했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 길을 더듬고 다른 길로 내려왔다. 역시 길 끝은 낭떠러지였다. 당황스러움은 이내 황당함으로 변했다. 몇 번 다시 길을 찾아도 결과는 같았다.
“아무래도 우리가 진법에 걸린 것 같아. 크지도 않은 야산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함께 간 동료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따라 웃을 수밖에…….
결국 우리는 일단 산 밑으로 내려가는 다른 방향의 확실한 길을 택했다. 내려 가보니 올라왔던 곳과는 정반대의 장소였다. 산모퉁이를 따라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걷고서야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심각하게 산악용 내비게이션 구입을 고민했다.
덕분에 산을 오를 때는 갈림길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만만하게 보지 않는 마음가짐도 가지게 됐다.
큰제비고깔
● Delphinium maackianum Regel
●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 여주, 2007년 7월 14일
◎ Camera Tip
FUJI S3Pro, Nikkor 60mm Macro, f/6.7, 1/90초, ISO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