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꽃의 민낯 (9)
들꽃소리
낙지다리Penthorum chinense Pursh 열매가 달린 모습이 낙지의 다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낙지다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습지에 사는 식물로 하천변이나 연못가에서 만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자생지를 알지 못하면 만나기가 쉽지 않다. 꽤 오래전 수원 황구지천변 어딘가에 자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열심히 찾아봤지만 허탕 친 기억이 있다. 제대로 만난 것은 오산의 물향기수목원에서다. 2014년 늦여름 산책 삼아 찾은 수목원 이곳저곳에서 무리지어 자라고 있는 것을 만났다. 꽃은 이듬해 여름 다시 가서 촬영했지만, 이름에 걸맞은 모습은 역시 열매가 열린 모습이다.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전 세계적으로 2종이 있으며, 우리나라 1종이 자생한다고 한다. 약관심종으로 보호받고 있는 식물이다. ..
호랑버들Salix caprea L. 봄이 되면 겨울잠을 자던 꽃눈들이 한껏 기지개를 편다. 2월말쯤이면 산속은 계곡을 따라 이른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지만, 꽃 소식이 늦은 마을 인근에서 그래도 봄기운을 제일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 버드나무다. 그러나 털이 보송보송한 꽃봉오리가 터지면서 꽃술이 만개하는 모습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버드나무의 종류가 많다. 갯버들, 수양버들, 왕버들, 들버들 등등 다양한 버드나무과 식물이 있는데, 이들을 구별하기가 영 쉽지가 않다. 사진의 버들은 호랑버들이다. 용인의 한 야산에서 촬영했다. 호랑버들의 꽃말은 ‘자유’고, 이름은 겨울눈이 마치 호랑이의 눈을 닮았대서 붙여졌다고 한다. 하얀 꽃봉오리에서 노란색 꽃을 피운다. 버드나무과의 낙엽활엽..
개나 소나 찍는 사진(?) 어느 해 봄 가평의 화야산 자락을 헤매고 있었다. 봄 야생화가 많은 곳이라 출사를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동료 사진가와 함께 등산로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야생화를 살피고 있는데, 등산복을 잘 차려 입은 두 중년 여성이 옆을 지나갔다. 미리 와 촬영을 마치고 내려가는 모양새였다. 사실 사람들이 오가는 데서 사진을 촬영하려면 좀 멋쩍다. 그래서 잠시 고개를 들고 숨을 고르는데 스쳐가듯 한 마디가 귀에 꽂혔다. “요즘은 개나 소나 다 사진을 찍어.”꼭 그렇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때는 우리를 보고 하는 소리로 들렸다. 둘 모두 잠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크게 웃었다. “졸지에 개하고 소가 됐네.”사실 요즘처럼 카메라가 대중화된 적이 없다...
제비꽃은 어려워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www.nature.go.kr)’에 등록된 제비꽃은 60여종이다. 종류가 많다보니 제비꽃만 모은 도감이 나올 정도다. 산이나 들에서 흔하게 만나는 제비꽃이다 보니 처음에는 무턱대고 촬영을 했지만, 나중에 분류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미분류 상태로 잠자고 있는 사진도 적지 않다.제비꽃의 색은 크게 보라색(짙거나 옅은 차이는 있지만), 흰색, 노란색으로 나뉜다. 그 중에는 태백제비꽃이나 남산제비꽃처럼 향이 나는 꽃들도 있다. 함께 촬영을 다니는 사람 중에 제비꽃만 열심히 공부한 분이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촬영 때마다 옆에서 분류를 해주어서 지금 정리해둔 것이 거의 그의 공이다. 제비꽃은 참 아련한 꽃이다. 북방 오랑캐가 쳐들..
60마 예찬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각종 장비들의 이름을 줄여 별칭으로 부르는 버릇이 있다. 캐논의 100㎜ 마크로 렌즈는 ‘백마’, 흔히 사용하는 70-200㎜ 줌 렌즈는 ‘백통’, 85㎜ 렌즈는 ‘만두’ 등으로 부른다. 필자가 야생화 촬영 때 주로 사용하는 렌즈는 니콘의 60㎜ 마크로 렌즈다. 이름하여 ‘60마’. 요즘 나온 신형이 아니고, 구형이다. 대략 10년 전에 중고품을 구입해 아직도 잘 쓰고 있다. 야생화 사진의 거의 대부분이 이 ‘60마’와의 합작품이다.세월에 걸맞게 곳곳에 상처가 나 있고, 함께 따라왔던 UV 필터에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가끔 신형 렌즈의 성능이 궁금해질 때가 있지만, 여전히 생생한 오랜 지기(知己)의 노익장만큼 미더워 보이지 않아 이내 눈길을 돌리고 만다...
지켜야 할 것들 열심을 너무 내다보면 본질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한동안 야생화 촬영을 하면서 발밑을 잊어버렸었다. 마음에 드는 꽃을 발견하면 주변을 살피지 않고 무작정 달려드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결과는 자생지에 남겨진 커다란 발자국과 그 밑에 눌려 버린 또 다른 꽃들의 비명 소리다. 엉덩이나 가슴, 배낭 아래서도 이런 무언의 비명소리는 자주 들린다.한동안 비슷한 실수를 자주했었다. 여전히 깜빡깜빡하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발조심이 생활화되어 가고는 있다. 꽃이 낙엽에 심하게 묻혀 있으면 조심스럽게 걷어내기도 하고, 꽃잎에 솔잎이 떨어져 있으면 들어내기도 한다. 사실 이런 행동조차 반성해야 마땅하다.어떻게 해서든 좋은 그림을 만들고 싶은 것이 사진을 하는 사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그런데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