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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소리

털여뀌 Persicaria orientalis (L.) Spach 여뀌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은 대체로 마디풀과에 속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종류는 40여종이 넘는다. 마디풀과의 다른 풀들과 마찬가지로 여뀌도 흔히 잡초 취급을 받고 있다. 그나마 털여뀌는 꽃도 크고 풍성해보여 관상용으로 뜰에 심기도 한다. 줄기에 잔털들이 많아 털여뀌라는 이름을 얻었다. 흔히 ‘노인장대’로도 불린다. 사진의 털여뀌는 수원 칠보산에서 촬영했다. 10년이 넘은 사진인데, 새삼 세월의 무상함이 와닿는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이다.
덩굴박주가리 Cynanchum nipponicum Matsum. ‘박주가리’라는 식물이 있다. 들판이나 담장 등에 덩굴지어 자라는 식물이다. 덩굴이나 잎을 자르면 우유빛깔의 유액이 나온다. 별처럼 생긴 작은 꽃들이 무리지어 피고 꽃잎에는 털이 보송보송하다. 열매는 표면이 오돌토돌한 돌기가 있는 원추형 주머니처럼 달린다. ‘덩굴박주가리’는 이 박주가리 가문에서 비교적 손이 귀한 집안에 속한다. 비슷한 사촌으로는 흑박주가리가 있고, 꽃이 더 작은 왜박주가리도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이들이 어느 집안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 혼란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백미꽃, 선백미꽃 등도 같은 집안이다. 사진의 덩굴박주가리는 2015년 여름 수원 칠보산에서 만났다. 박주가리라는 이름은 표주박을 닮은 열매가 익어 갈라지는..
히어리Corylopsis gotoana var. coreana (Uyeki) T.Yamaz. 이른 봄 노란색 꽃을 피우는 대표적인 식물로는 생강나무와 산수유가 있다. 둘은 얼핏 보면 비슷해 보여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같은 노란색 꽃을 피우지만 절대 이 둘과 혼동할 수 없는 나무꽃이 있다. 히어리다. 히어리의 이름은 전라남도에서 시오리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시오리는 거리를 뜻하는 십오리를 의미하는데, 나무가 이 간격으로 자라고 있어서 그렇게 불렸다고 전해진다. 처음 히어리를 발견한 사람은 일본인 학자였는데, 당시 그는 송광사 인근에서 이 나무를 만났다고해 송광납판화라고 이름 붙였다. 그 뒤 이창복 박사가 시오리에서 구전된 히어리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아주었다.주로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자생하..
칠보산 연가 “도대체 칠보산이 어디야?”언젠가 봄, 한국야생식물연구회 정기모임이 수원에서 열렸다. 회원들 사이에 칠보산 이야기가 워낙 많았던 터라, 강원도에서 온 한 회원이 칠보산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저~기”라며 길게 드러누운 산을 가리켜 주었다. 이내 실망한 듯 “저것도 산이야?”란 대답이 돌아왔다. 뭐, 강원도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높이가 239m 밖에 안 되니 강원도의 험산준령에 비하면 그저 동네뒷산(?) 쯤으로 보일 밖에. 하지만 이름이 풍기는 아우라(aura)가 좀 특별하지 않은가? 일곱 개의 보물이 숨겨져 있는 산이라니……. 지금은 도심 귀퉁이에 있는 등산로 정도로 여겨지지만, 옛날 이 산에는 산삼, 맷돌, 잣나무, 황금수탉, 호랑이, 사찰, 장사, 금 등 여덟 가지 보물이 숨겨..
바위솔 실종사건 종종 의외의 장소에서 특별한 야생화를 만날 때가 있다. 더운 여름 땡볕에 해변을 헤매다가 자리 잘 잡은 갯장구채를 만나는가 하면,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붉은 바위벽에서 무리지어 자라는 고란초를 만날 때가 그런 경우다. 화성에서 대부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매립된 갯벌을 꾸며 만든 공원이 있다. 그곳에는 오래전 섬이었던 조그마한 바위언덕 몇 개가 지평선에 굴곡을 만들며 서있다. 야생화 탐사 때는 그런 곳이 훨씬 끌리는 법이다. 두어 개 바위언덕을 뒤지다가 행운의 바위솔 무리를 만났다. 개체수가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꽤 멋진 자태를 자랑하는 바위솔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모두 꽃망울을 가득 품은 채였다. 사진을 촬영하는 내내 꽃 핀 모습이 기다려졌다. 일주일만 지나면 만개할 듯 보였..
멜랑꼴리 목련꽃을 보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아주 오래전이라 얼굴조차 흐릿한데, 그 기억은 언제나 목련꽃과 함께 한다.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세월이 지나니 마음도 단단해져 이제는 그런 이미지가 쉽사리 각인되질 않는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또 한편으로는 무뎌져 가는 가슴이 편하기도 하다. 마음을 다치는 일은 적어 졌지만, 비슷한 생채기들은 지금도 스치듯 생겨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카메라를 걸어 놓고 꽃의 민낯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불현 듯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 모습들은 대체로 흐릿하다. 촬영해온 꽃 사진을 정리할 때도 문득문득 옛 기억의 얼굴을 만나고는 한다. 그가 그 꽃을 닮았는지, 그 때의 장소에 함께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때 그 장소에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