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소리
[나, 잡초 아니거든!] -1 ‘사랑초’ 혹은 ‘괭이밥’ 본문
어느 구름 낀 일요일 오후, 어머니께서 가꾸는 화단에 나갔다가 옆 동 빌라 벽에 붙어서 자란 작은 식물을 발견했다. 녀석은 콘크리트로 덮인 바닥과 건물이 만나는 경계의 좁은 틈을 뚫고 키를 키웠다. 끝에는 몇 송이의 노란 꽃을 반쯤 피우고 있었는데, 하늘색 벽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꺼내 들고 나왔다. 파인더를 통해 본 녀석은 하늘색 벽의 거친 무늬를 뚫고 더 높이 올라가려는 듯 보였다. 사람들이 ‘클로버’로 종종 오해하는 ‘괭이밥’이었다. 진짜 클로버는 꽃반지, 꽃팔찌 만드는 ‘토끼풀’로, 이 녀석도 잡초로 불리긴 마찬가지 신세다. 괭이밥은 말 그대로 ‘고양이 밥’이란 의미다. 고양이가 먹는데서 이 이름이 붙여졌단다.
어머니는 괭이밥을 보고 경상도에서는 ‘새금’이라 부른다고 일러주셨다. 잎을 씹으면 새콤한 맛이 나기 때문이란다. 흔히 집 주위나 근처 산과 들에서 자라는 비슷한 모양의 녀석들은 대부분 ‘괭이밥’ 또는 ‘선괭이밥’이다. 모양도 비슷하고 해서 언뜻 구분이 쉽지 않지만 괭이밥은 5~8월 사이에 꽃이 피고, 선괭이밥은 7~8월에 꽃이 핀다. 그리고 선 괭이밥은 말 그대로 줄기가 고추 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구분하기란 정말 힘들다.
또 잎이 자주색인 것도 있다. 물론 그냥 괭이밥으로 불린다. 과거에는 이런저런 이름으로 분류했지만 요즘은 대체로 통합하는 추세인 듯싶다.
그런데 꽃과 잎을 좀 키워서 생각하면 어디선가 봤음직한 느낌이 든다. 어머니께서 키우는 화초 중에도 크기와 꽃색만 다를 뿐 똑 같이 생긴 식물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쉬지 않고 연분홍 꽃을 피우기까지 한다. 자주색 잎을 가진 ‘사랑초’가 그 주인공이다. 왜 사랑초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르겠고, 다만 꽃말이 ‘당신을 버리지 않음’이란다. 잎이 하트 모양이어서 그런가? 원예식물들이 대부분 그렇듯, 다양한 종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분이 쉽지 않아 그냥 사랑초로 부른다.
충북 괴산에 있는 여동생네 구아바 농장 하우스 안에 짙은 파스텔톤의 분홍색 꽃이 피는 ‘자주괭이밥’이 자라고 있었다. 물론 이 녀석도 사랑초처럼 외국에서 들어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여기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이 녀석이 마음에 들어 구아바 뿌리와 거의 붙어 있는 것을 겨우 뽑아다 심었다. 녀석은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강제 퇴거당해 한 동안 사는 가 싶더니 얼마 후 말라버렸다.
산에서 만날 수 있는 괭이밥으로는 ‘큰괭이밥’과 ‘애기괭이밥’이 있다. 애기괭이밥 보다는 큰괭이밥이 만나기 쉽다. 아직 애기괭이밥은 만나 보지 못했다. 둘 다 5~6월에 산속에서 만날 수 있고 우리나라 토종이다. 일반적으로 괭이밥은 ‘옥살리스(Oxalis)’로 부른다. 학명이 과명인 옥살리스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괭이밥은 원예종이든 야생종이든 생명력 하나는 정말 끈질기다. 심지어 무성하다고 뽑아 던져버린 사랑초가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자라기까지 한다. 그러니 야생의 괭이밥은 어떻겠는가. 하지만 카메라 꺼내들고 애써 촬영한 괭이밥은, 다음날 반쯤 다문 꽃잎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촬영 하려고 했더니, 누군가 손으로 잡아 뽑아 버린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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