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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제로에 도전한다 - 영국 베드제드(BedZED)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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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제로에 도전한다 - 영국 베드제드(BedZED)

이우형 2011. 8. 28. 21:49


 

영국 런던 서튼(Sutton)지구 왈링턴(Wallington)에 위치한 탄소제로 주거타운 베드제드(BedZED). 베드제드는 ‘베딩턴 제로 에너지 개발(Beddington Zero Energy Development)’에서 유래했다.



 

 


영국 베드제드(BedZED)
3중 유리, 벽두께 50㎝ 열손실 최소화
옥상에 빗물 받아 화장실, 정원수로 사용… 자동차는 공용으로

 



이른 아침 런던 중심가를 벗어나 승용차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전날까지 잔뜩 찌푸린채 비를 뿌렸던 하늘은 반갑게도 맑고 푸르게 변해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유럽의 겨울날씨를 걱정하며 30분 정도를 달리자 한적해 보이는 주택가가 나타났다. 영국 런던 서튼(Sutton)지구 왈링턴(Wallington)이었다. 왼쪽으로 낯익은 주택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탄소제로 주거타운으로 세계적 유명세를 타고 있는 베드제드(BedZED)였다. 베드제드는 마치 우리나라의 연립주택단지의 모습과 흡사하게 느껴졌다.


 

 

 

베드제드의 주택 형태는 우리의 연립주택을 연상시킨다. 지붕에는 태양전지판과 환풍기, 그리고 잔디가 심어져 있다. 잔디는 빗물을 받아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채색된 환풍기에는 열교환기가 장착되어 바깥의 차가운 공기와 내부의 더운 공기를 혼합해 열손실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3층 창문에는 태양전지판이 붙어 있다.


 

 

 

오수처리시설 부지에 건설
베드제드는 생태주거단지의 표본이자 친환경건축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베드제드란 명칭은 ‘베딩턴 제로 에너지 개발(Beddington Zero Energy Development)’에서 유래했다. 베드제드가 건축된 곳은 원래 런던 남부 외곽에 위치한 오수처리시설 부지였다. 이곳을 저소득층 지원 자선기관이 ‘피버디 트러스트(Peabody Trust)’가 구입해 ‘바이오레지오날 개발 그룹(BioRegional Development Group)’과의 합작으로 탄소제로 주거타운으로 건설했다. 설계는 친환경 건축가 ‘빌 던스터(Bill Dunster)’가 담당했다. 2000년에 건축을 시작해 2002년 완공된 이 단지에는 100여 가구의 주택과 재택근무자를 위한 사무공간 등이 마련되어 있다.
베드제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지붕이다. 긴 연립형태의 3층짜리 주택 지붕에는 사람들이 '닭벼슬'로 표현하는 환풍기가 늘어서 있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인상적이었다. 이 환풍기에는 바람에 따라 회전하면서 외부의 공기를 실내로 공급한다. 또 환풍기에 열교환기가 장착되어 외부의 찬공기를 실내의 더운 공기와 섞이게 함으로써 실내의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베드제드에 사는 주민들은 “여름에 시원하거나 겨울에 따뜻할 정도의 온도는 아니지만 익숙해지면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브리지. 모든 공간이 에너지 효율을 감안해 설계된 베드제드는 벽의 두께만 50cm나 된다. 전등의 빛 사람의 체온까지도 모두 잡아 놓는다.

 

 



 

화석연료 사용 최대한 억제
베드제드의 가장 특징적인 설게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최대한 억제했다는 점이다. 지붕에는 태양전지판이 깔려 있고, 창의 방향도 남향으로 되어 있어 최대한 햇볕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3층 창문에도 태양전지판이 붙어 있다. 유리창은 모두 3중이다. 벽은 30㎝나 되는 단열용 목재가 들어가 있다. 이로 인해 벽의 두께는 50㎝나 된다. 이런 설계는 내부의 열손실을 최소화시켜준다. 심지어 요리할 때, 전등을 켤 때, 사람의 몸에서 나는 열까지 어느 것 하나도 새어나가지 않는다.
지붕의 옥상에는 잔디가 깔려 있어 빗물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받아진 빗물은 지하에 있는 지름 1.2m의 탱크에 저장된다. 이 물은 화장실과 정원용수로 사용한다. 물을 아끼기 위해 샤워기나 싱크대의 수돗물도 콸콸 흐르지 않도록 했다.
교통수단의 이용도 환경을 생각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이 단지의 주차장은 100가구 당 0.5대를 기준으로 설치했다. 자동차를 주차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요금을 내고 주차공간을 사야한다. 하지만 공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동차가 마련되어 있다. 주민들은 이 자동차를 이용하고 사후에 정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이 주택단지에는 전기차를 위한 충전시설이 주차공간에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전기는 단지의 태양전지판을 통해 공급된다.

 

 

베드제드에 동력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열병합발전소. 나무와 바이오매스 등 친환경연료만 사용해 전력을 생산한다. 현재는 운영상의 문제로 가동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인근 보다 전기사용량 45% 줄여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친환경 설계 덕분에 베드제드는 주변지역보다 전기사용량을 45%나 줄였다. 물 사용량은 58%, 온수용 에너지는 80% 절감하고 있다. 주민들의 생활형태도 크게 변했다. 처음 입주시 주민들의 환경의식은 특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거주하면서 환경에 대한 의식은 크게 달라졌다. 거의 모든 주민들이 유기농 음식을 먹고 있으며, 쓰레기의 양도 60%나 줄었다. 주민들의 40%는 직접 야채를 길러서 먹고 있다.
베드제드의 입주자 중 30%는 저소득층이다. 베드제드를 건축한 피버디 트러스트가 저소득층 지원기관인 탓이다. 또 30%는 피버디 트러스트와 입주자들이 공동소유를 하고 있고, 나머지 40%는 일반 분양됐다. 주택가격도 상당히 비싸 인근 지역단지보다 30% 정도 더 높다. 하지만 아껴지는 에너지 절약 분으로 수년 내에 상쇄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입주를 기다리는 사람은 많지만, 여간해서 주택이 비는 경우는 없단다.
지난 2007년 영국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을 국가 정책의 장기 목표로 정했다. 그리고 지속가능 주택을 위한 빌딩 코드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건물 소재, 물 효율, 에너지 소비, 탄소 배출량, 쓰레기 양 등 모두 9개 항목을 평가해 단계별로 1~6등급까지 나눴다. 이 기준에서 6등급은 말 그대로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제로(0)’를 의미한다. 2008년부터 공공 빌딩은 이 기준에 의한 레벨 3이 의무화 됐다. 또 10월부터는 공공건물에 에너지 효율성을 표시하는 에너지인증표시제도도 의무화했다. 이와 함께 탄소배출이 전혀 없는 건물에 대해서는 주택가격에 따라 등록세를 면제해주거나 공제해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에너지 저감과 탄소배출을 최대한 억제하는 이른바 탄소제로를 지향하는 신도시 건설이 발표됐다. 하지만 체계적인 건설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 베드제드는 정부의 탄소저감 노력과 주민들, 그리고 시공사와 설계자의 환경의식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베드제드를 떠나며 이곳에서 한번쯤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드제드 앞 도로. 전형적인 영국 주택가 가운데 위치해있다. 계속 비가 내리던 날이 모처럼 활짝 개어 촬영을 온 우리를 반겨주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