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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소리
서원은 조선중기부터 전국에 세워진 일종의 사립학교다. 서원은 두 가지 역할을 했는데, 하나는 사표가 될 만한 선대 명현(明賢)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지방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1542년 중종 37년에 경상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서원은 1550년 명종5년 당시 풍기군수였던 퇴계 이황의 주청에 의해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임금이 친필로 이름을 지어 편액을 내린 것(사액·賜額)으로써, 요즘으로 말하면 교육부 인가의 사립학교에 해당한다. 이를 사액서원이라고 부르는데, 사액서원이 되면 왕의 친필 간판과 함께 땅과 노비 등이 내려졌고, 면세와 면역의 특권까지 주어졌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서원의 특혜를 이용한 ..
흔히 군인은 위협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특히 북한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 이란의 군인이라면 더욱 그렇다.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어디나 비슷하다. 테헤란에서 만난 이 군인도 그런 사람이다.지금은 관광지이자 박물관이 된 팔레비궁의 군사박물관에서 만난 군인은 촬영을 위해 포즈를 요청하자 흔쾌히 모델이 되어 주었다.부드럽게 미소 짓는 표정에는 친절함마저 느껴졌다.
이란을 처음 방문하게 됐을 때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미국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익숙한 탓에 이란을 북한과 비슷한 나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미레이트항공에 근무하는 후배들이 이란으로 비행갔다가 폭설에 발이 묶여 비행기에서 사흘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위기감을 더하게 만들었다. 이란에서의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지만 각설하고, 염려와는 달리 이란은 상당히 괜찮은 국민들을 가진 나라였다. 뉴스에서 보는 살벌함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과거 팔레비 시대의 자유로움이 아직도 곳곳 남아 있는 듯했다.그렇다고 이 나라가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히잡을 단속하는 경찰이 따로 있고 외국인 여자도 히잡을 써야할 정도로 여전히 행동이 쉽지 않다.다행히 주이란한국대사관과 대사님의 배려로 좀더 편안하게 테헤란을 둘러 ..
저녁식사 후 식당 앞에서 만난 신문 보는 경비원. 늦은 시간이고 손님이 없어서 인지 거리 등불 밑 스쿠터에 걸터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식당 간판과 거리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리는 장면이라 한 컷.인도에서 촬영한 많은 사진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편한 콤팩트 카메라로 촬영을 했다. 때로는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고 카메라가 스스로 설정해주는 대로 촬영하는 것이 편할 때가 있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나선 뭄바이 거리에서 만난 노점상.길거리 음식을 파는데 음식의 종류는 알 수가 없었다.언듯 스치며 지나는 길에 인상 깊어 한 장 촬영했다.시간이 있었으면 음식을 사먹으며 이야기라도 나누었을텐데.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진이다.
뭄바이 해변에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원숭이 한 마리와 함께 다니며 돈을 구걸했다. 지팡이 짚은 원숭이와 구걸하는 소년이라니... 함께 간 가이드는 절대로 돈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소년은 앞에서 계속 원숭이에게 곡예를 시키며, 뭔가를 보여주려고 노력 중이었다. 코코넛을 사 마시는 중에도, 또 뭔가를 두리번 거리면 눈치껏 먼저 뭔가를 찾아주는 시늉을 했다. 결국 나무 그늘 아래에서 같은 행색의 또 다른 소년과 마주치면서 손을 들고 말았다.웃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소년은 신나하면서 원숭이에게 몇 가지 재주를 부리게 했다. 덤블링이 전부였지만 어쨌거나 소년은 자랑스러운듯 쳐다보았다. 가이드에게 어느 정도 주면 되냐고 물었더니 동전을 가지고 있으면 좀 주면 된다고 했다. 가지고 있는 동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