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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출판기획

이우형 2019. 12. 7. 11:49

만만한 출판기획

이홍 지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제목이 ‘만만’해서 읽어보았다. 본업이 잡지장이(여전히 ‘쟁이’가 더 입에 붙는다)인지라 책 만드는 일은 그런대로 손에 익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잡지와 다른, 단행본의 기획은 어떤가 싶어 읽게 되었다.

 

처음 생각은 출판기획의 기술서가 아닐까 싶었는데, 읽다보니 경영서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 이홍은 웅진 임프린트 리더스북의 대표라고 소개되어 있다. 책을 읽다가 저자가 궁금해 검색을 해봤더니 현재는 한빛비즈 편집이사로 재직 중인 것으로 나왔다. 저서는 3권인데, <만만한 출판기획>은 2008년판과 2012년판이 있다. 지금 읽은 것이 2012년판이니 아마도 개정판인 듯싶다. 그리고 또 하나 <편집자로 산다는 것>도 2012년판이다.

 

칼럼형태로 쓰인 그의 글들은 출판동네(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겼다)에 대한 제법 거한 입담들이 담겨 있다. 출판에 대한 그의 생각과 그가 몸담고 있는 출판동네에 대한 솔직한 평가 등이 마음에 들었다. 모름지기 한 우물을 판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식견과 자기반성, 충고는 가능해야 한다고 믿는다.

 

책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출판동네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출판기획자들의 현실이, 2부는 출판기획자들을 위한 조언 내지는 출판기획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고 세상에 내놓는 일이, 보통의 기업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일은 대부분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겉모습이 다르게 보여 그렇지 그 속에 담겨 있는 이치 또는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베스트셀러가 시장과 독자의 반응과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베스트바이어’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진단은 정확하다. 이는 오늘날 책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화상품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 대중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반응 자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여기서 대중은 ‘판단 주체’가 아닌 ‘상황 설정의 도우미’ 정도로 전락한다. … 영화도 마찬가지다. “흥행의 성공과 실패는 사전 마케팅에서 90퍼센트가 결정된다. 개봉은 그 결과를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는 분석은 출판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p111.

 

그럼에도 불구하는 저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대중의 요구에 맞는 장르라는 장점이 시장의 질서를 교란하고 독자의 선택을 흐리는 단점으로 역이용되고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p117~8

 

모든 기업들이 신제품을 개발할 때 하는 고민은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이다. 과거 경제지를 만들면서 숱한 기업경영자들을 만났었다. 그들 모두의 고민은 시장에서 선택받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생각하는 방법은 모두 달랐다. 그 중에 그나마 공통점을 가진 그룹으로 묶는다면 영업력을 기반으로 창업한 CEO와 기술력을 기반으로 창업한 CEO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일단 경험으로는 영업출신의 CEO가 사업에 성공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들은 시장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고 기술자들에게 거기에 맞는 기술적 사양을 요구한다. 반면 기술자 출신의 CEO들은 자신의 기술이 담긴 제품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일은 존망과 생사가 걸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만만’하지가 않다. 이런저런 잡지 10여종을 만들면서 25년 넘게 몸담은 잡지동네도 살아가기 ‘만만치’ 않았고, 그 세월동안 만난 숱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들은 삶 역시 ‘만만치’ 않았다.

 

책은 출판기획자가 그 ‘만만치’ 않은 동네를 살아가면서 독자들이 선택하는 ‘만만한 책’을 만들 수 있는 방법, 아니 자세를 이야기한다.

 

출판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좋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의 구분이 명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종이만 낭비하는 책은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책도 출판이 될 때는 그만한 이유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나쁜 책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내가 만든 책을 누가 읽을 것이며 어떻게 소통되는 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좋은 책을 만들 수 있겠는가?」 p238.

이 부분은 격하게 동의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흐트러지지 않는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일을 하다보면 원칙이 작용하지 않을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가끔 변칙을 쓰기도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변칙은 한 번만 사용해야 하는 것인데, 어느 틈에 변칙이 원칙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또 다른 변칙이 나오고 어느 틈에 지켜야할 원칙은 사라지고 만다. 변칙의 기준은 원칙이다. 어느 분야에서 일하든 프로가 되고 싶다면 꼭 기억해야 될 원칙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자가 후배 출판기획자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이 원칙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출판기획자의 원칙이 담겨 있다.

 

「세상에 나온 모든 책들이 가지는 고민의 핵심은 ‘존재감’을 얻는 것이다. 결국 가장 평범한 독자와 가장 극적으로 만날 최선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기획자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p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