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야생화 탐사 (39)
들꽃소리
봉래꼬리풀Veronica kiusiana var. diamantiaca (Nakai) T.Yamaz. 꼬리풀은 우리나라 각 처에서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이다. 꽃이 피는 모양이 동물의 꼬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꼬리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꼬리풀은 종류도 많아 국내에 10여종 정도가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현삼과 식물이지만, ‘전주물꼬리풀’처럼 꿀풀과나 ‘여우꼬리풀’처럼 백합과의 식물 등이 꽃모양 때문에 꼬리풀이라는 이름을 얻는 경우도 있다. ‘봉래꼬리풀’은 이름에서 최소한 3개의 정보를 알 수 있다. 봉래는 금강산의 여름 이름이니, 이 꽃은 금강산에서 여름에 피는 꼬리풀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금강산 비로봉 인근에 자생지가 있다고 한다. 남쪽에는 설악산에 협소하게 자생지가 분포하는 것..
사진과 그림 사이 언젠가 여름 오대산 월정사를 찾았을 때다. 가끔 찾는 월정사를,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틈에 끼어 따라갔다. 다양한 사진가들이 모인 온라인 동호회답게 이런저런 피사체들을 잡고 촬영하느라 모두 여념이 없었다. 함께 가기를 꼬드긴 동료와 전나무숲길을 걷고 있는데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한 사진가가 버섯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버섯의 위치가 어딘지 어색했다. 바른말 잘하는 동료가 다가가더니 “이 버섯이 자랄 자리가 아닌데?”라며 유심히 살폈다. 촬영 중이던 사진가는 “저쪽에서 따서 옮겼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의 이야기인 즉, 배경이 좋지 않아 더 좋은 배경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동료는 “자연을 촬영하는 사람이 자연을 함부로 하면 안 되지요”라며 발끈했다..
길을 잃다 제법 오래전 이야기다. 안면도로 새우란 촬영을 떠났다. 산허리 곳곳에 옹벽이 설치되어 있는 높지 않은 야산이었다. 넓게 닦아 놓은 공터에 차를 세우고 좁은 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새우란 몇 촉과 금난초 몇 촉, 은난초도 눈에 들어왔다. 남쪽에서나 만날 수 있는 옥녀꽃대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산 속에서 보냈다. 풍성한 수확을 얻은 우리는 장소를 옮기기 위해 다시 산을 내려왔다. 길이라고 해야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하나, 그리고 좌우로 갈라진 길 두어 개가 전부였다. 만족감에 가득 찬 하산길은 잠시 후 당황스러움으로 변했다. 길 끝에 높은 옹벽이 떡하니 나타났다. 뛰어내리기에는 높이가 상당했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 길을 더듬고 다른 길로 내려왔다. 역..
멜랑꼴리 목련꽃을 보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아주 오래전이라 얼굴조차 흐릿한데, 그 기억은 언제나 목련꽃과 함께 한다.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세월이 지나니 마음도 단단해져 이제는 그런 이미지가 쉽사리 각인되질 않는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또 한편으로는 무뎌져 가는 가슴이 편하기도 하다. 마음을 다치는 일은 적어 졌지만, 비슷한 생채기들은 지금도 스치듯 생겨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카메라를 걸어 놓고 꽃의 민낯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불현 듯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 모습들은 대체로 흐릿하다. 촬영해온 꽃 사진을 정리할 때도 문득문득 옛 기억의 얼굴을 만나고는 한다. 그가 그 꽃을 닮았는지, 그 때의 장소에 함께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때 그 장소에서 그..
노랑무늬붓꽃[Iris odaesanensis Y.N.Lee] -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현재 멸종위기식물로 보호받고 있다. 하얀꽃잎에 노랑무늬가 들어있어 노랑무늬붓꽃이란 이름을 얻었다. 자생지는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의 산지로 비교적 넓게 분포되어 있고, 개체수도 많은 편이다. 자생지를 잘 알고 때를 맞춰 찾아가면 더 없이 좋겠지만, 전업이 아닌 다음에야 항상 시절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가끔 운이 좋으면 뜻하지 않게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사진의 노랑무늬붓꽃이 그런 얼굴이다. 5월초의 긴 연휴를 맞아 떠난 여행에서 노랑무늬붓꽃을 만났다. 꽃을 촬영하러 간 여행은 아니었지만, 카메라를 메고 다닌 탓에 반가움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10년 정도 야생화..
가벼운 게 좋아 야생화 사진을 촬영하면서 가장 많이 산 게 카메라 가방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숄더백, 배낭, 슬링백, 힙색 등등, 심지어 장비 주머니를 달 수 있는 조끼에 벨트까지 세트로 구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마음에 쏙 드는 가방은 없다. 촬영을 나갈 때면 챙겨야 될 장비가 많다. 카메라 두 대에 광각부터 망원까지 렌즈 서너 개, 거기에 초점거리 따라 마크로 렌즈도 두어 개, 또 각종 필터와 액세서리들까지 더하면 가방은 점점 커진다. 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면 그야말로 야전훈련 나가는 군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삼각대까지 들면 영락없이 총 든 군인의 모습이다. 이렇게 산을 몇 번 타고 나면 장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격하게 든다. 가져가야 할 것과 놓아두고 가도 될 것들이 눈에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