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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꽃의 민낯

19. 멜랑꼴리

이우형 2016. 5. 18. 14:26

멜랑꼴리

 

 

목련꽃을 보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아주 오래전이라 얼굴조차 흐릿한데, 그 기억은 언제나 목련꽃과 함께 한다.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세월이 지나니 마음도 단단해져 이제는 그런 이미지가 쉽사리 각인되질 않는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또 한편으로는 무뎌져 가는 가슴이 편하기도 하다. 마음을 다치는 일은 적어 졌지만, 비슷한 생채기들은 지금도 스치듯 생겨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카메라를 걸어 놓고 꽃의 민낯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불현 듯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 모습들은 대체로 흐릿하다. 촬영해온 꽃 사진을 정리할 때도 문득문득 옛 기억의 얼굴을 만나고는 한다. 그가 그 꽃을 닮았는지, 그 때의 장소에 함께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때 그 장소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는 그렇게 다시 잠시 마음에 머물다가 이내 떠나간다.

사진은 흘러 지나가는 시간의 한 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그 순간은 변함없이 사진 속에 담겨 있는데, 시간의 끝에 남아 있는 것은 흐릿한 기억들의 조각뿐이다. 심지어 기억의 조각마저 묘연한 사진들도 적지 않다. 사진들 속에 담겨 있는 시간은 그렇게 감정과 기억을 왜곡시킨다. 하물며 꽃 사진 속에 담긴 기억이야 말해 무엇 할까.

글을 쓰면서 잠시 빠져든 엉뚱한 감정이다.

 

 

 

나비나물(흰색)

Vicia unijuga A.Braun

콩과의 여러해살이풀

수원 칠보산, 2012922

Camera Tip

Nikon D300s, Nikkor 60mm Macro, f/5.6, 1/2000, ISO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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