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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꽃의 민낯

21. 길을 잃다

이우형 2016. 7. 1. 13:43

길을 잃다

 

 

제법 오래전 이야기다. 안면도로 새우란 촬영을 떠났다. 산허리 곳곳에 옹벽이 설치되어 있는 높지 않은 야산이었다. 넓게 닦아 놓은 공터에 차를 세우고 좁은 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새우란 몇 촉과 금난초 몇 촉, 은난초도 눈에 들어왔다. 남쪽에서나 만날 수 있는 옥녀꽃대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산 속에서 보냈다.

풍성한 수확을 얻은 우리는 장소를 옮기기 위해 다시 산을 내려왔다. 길이라고 해야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하나, 그리고 좌우로 갈라진 길 두어 개가 전부였다. 만족감에 가득 찬 하산길은 잠시 후 당황스러움으로 변했다. 길 끝에 높은 옹벽이 떡하니 나타났다. 뛰어내리기에는 높이가 상당했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 길을 더듬고 다른 길로 내려왔다. 역시 길 끝은 낭떠러지였다. 당황스러움은 이내 황당함으로 변했다. 몇 번 다시 길을 찾아도 결과는 같았다.

아무래도 우리가 진법에 걸린 것 같아. 크지도 않은 야산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함께 간 동료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따라 웃을 수밖에…….

결국 우리는 일단 산 밑으로 내려가는 다른 방향의 확실한 길을 택했다. 내려 가보니 올라왔던 곳과는 정반대의 장소였다. 산모퉁이를 따라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걷고서야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심각하게 산악용 내비게이션 구입을 고민했다.

덕분에 산을 오를 때는 갈림길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만만하게 보지 않는 마음가짐도 가지게 됐다.

 

 

 

큰제비고깔

Delphinium maackianum Regel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여주, 2007714

Camera Tip

FUJI S3Pro, Nikkor 60mm Macro, f/6.7, 1/90, ISO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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