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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꽃의 민낯

23. 있어야 할 곳

이우형 2016. 7. 13. 13:24

있어야 할 곳



화창한 봄,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바위 위로 하얀 꽃이 핀 나무를 만나게 된다. 크지 않은 키에 가지가 많은 이 나무는 매화말발도리다. 형제 중에 말발도리라는 식물이 있는데, 이 나무는 꽃이 매화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다른 식물들은 대부분 영양분 많은 부엽토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데, 특이하게도 매화말발도리는 바위틈에 터전을 잡는다. 식물 자체가 강건해서 고생을 자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꽃은 대를 물려가며 척박한 바위틈을 골라 뿌리를 내린다. 

요즘은 자연에서 보기가 힘들지만, 풍란이나 석곡 같은 착생난들은 아예 뿌리를 바위나 나무에 붙이고 살아간다. 갯씀바귀 같은 식물은 바닷가 모래에 뿌리를 내린다. 여름 뙤약볕도 이들의 삶을 멈추게 하진 못한다. 꽃들은 모두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잘 알고 있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한 장소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는 꽃들이, 오히려 더 안락하고 풍요로운 환경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자주 본다. 모두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자신만의 삶터가 있는 모양이다.

여담 하나. 20여 년 전 고창 선운사 일대에 석곡 자생지를 복원하는 행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취재 겸 행사 관계자로 자생지 복원행사에 참가했다. 그 이후에는 찾아가 보지 못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곳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인터넷에서 만났다. 풍성히 무리지어 꽃을 피운 석곡 사진을 보면서, 절벽에 매달려 복원행사 촬영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갯씀바귀

● Ixeris repens (L.) A. Gray

●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 울진, 2007년 8월 9일

◎ Camera Tip 

FUJI S3Pro, Sigma 24mm Macro, f/4, 1/1,000초, ISO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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