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들꽃이야기/꽃의 민낯 (28)
들꽃소리
칠보산 연가 “도대체 칠보산이 어디야?”언젠가 봄, 한국야생식물연구회 정기모임이 수원에서 열렸다. 회원들 사이에 칠보산 이야기가 워낙 많았던 터라, 강원도에서 온 한 회원이 칠보산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저~기”라며 길게 드러누운 산을 가리켜 주었다. 이내 실망한 듯 “저것도 산이야?”란 대답이 돌아왔다. 뭐, 강원도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높이가 239m 밖에 안 되니 강원도의 험산준령에 비하면 그저 동네뒷산(?) 쯤으로 보일 밖에. 하지만 이름이 풍기는 아우라(aura)가 좀 특별하지 않은가? 일곱 개의 보물이 숨겨져 있는 산이라니……. 지금은 도심 귀퉁이에 있는 등산로 정도로 여겨지지만, 옛날 이 산에는 산삼, 맷돌, 잣나무, 황금수탉, 호랑이, 사찰, 장사, 금 등 여덟 가지 보물이 숨겨..
바위솔 실종사건 종종 의외의 장소에서 특별한 야생화를 만날 때가 있다. 더운 여름 땡볕에 해변을 헤매다가 자리 잘 잡은 갯장구채를 만나는가 하면,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붉은 바위벽에서 무리지어 자라는 고란초를 만날 때가 그런 경우다. 화성에서 대부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매립된 갯벌을 꾸며 만든 공원이 있다. 그곳에는 오래전 섬이었던 조그마한 바위언덕 몇 개가 지평선에 굴곡을 만들며 서있다. 야생화 탐사 때는 그런 곳이 훨씬 끌리는 법이다. 두어 개 바위언덕을 뒤지다가 행운의 바위솔 무리를 만났다. 개체수가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꽤 멋진 자태를 자랑하는 바위솔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모두 꽃망울을 가득 품은 채였다. 사진을 촬영하는 내내 꽃 핀 모습이 기다려졌다. 일주일만 지나면 만개할 듯 보였..
낙지다리를 줍다 낙지다리라는 식물이 있다. 하천변 등에서 자라는 이 식물은, 좀처럼 보기 어려워 ‘약관심종’으로 보호받는, 제법 귀한 몸이다. 줄기가 올라와 끝에서 여러 가지로 갈라지고, 그 가지를 따라 하얀색 꽃이 줄지어 핀다. 꽃이 지고 나면 낙지의 빨판을 닮은 열매가 달리는데, 그 모습이 낙지의 다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낙지다리라는 지극히 직설적인 이름을 얻었다. 어느 해 여름, 수원과 화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황구지천변에 이 낙지다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 나섰다. 키가 큰 하천 식물들을 헤집고 무릎 높이의 낙지다리를 찾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결국 못 찾았다. 대신 다른 꽃들만 풍성하게 촬영했다.잊고 살다가 2014년 가을, 집 근처의 한 식물원을 찾았다. 그저 산책이..
암실과 포토샵 사진을 처음 배울 당시 암실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촬영한 필름을 직접 현상해 인화하는 작업은 사진의 완성을 의미했다. 닷징이니 버닝이니 하는 인화의 기술도 그때는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했다. 지금은 순서마저 가물가물하다. 컬러, 그것도 리버셜 필름으로 촬영을 하다 보니 현상을 스스로 할 일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그저 이렇게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정도다.요즘은 디지털암실이라는 말을 대신 쓴다. 포토샵이나 각 카메라 메이커 등에서 제공하는 사진보정 프로그램 등이 암실의 역할을 대신한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과거 암실에서 할 수 있는 수정 작업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촬영 때 계산하지 않으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고, 그나마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았다. 그런데 디지털암실에서는 못..
사진과 그림 사이 언젠가 여름 오대산 월정사를 찾았을 때다. 가끔 찾는 월정사를,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틈에 끼어 따라갔다. 다양한 사진가들이 모인 온라인 동호회답게 이런저런 피사체들을 잡고 촬영하느라 모두 여념이 없었다. 함께 가기를 꼬드긴 동료와 전나무숲길을 걷고 있는데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한 사진가가 버섯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버섯의 위치가 어딘지 어색했다. 바른말 잘하는 동료가 다가가더니 “이 버섯이 자랄 자리가 아닌데?”라며 유심히 살폈다. 촬영 중이던 사진가는 “저쪽에서 따서 옮겼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의 이야기인 즉, 배경이 좋지 않아 더 좋은 배경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동료는 “자연을 촬영하는 사람이 자연을 함부로 하면 안 되지요”라며 발끈했다..
있어야 할 곳 화창한 봄,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바위 위로 하얀 꽃이 핀 나무를 만나게 된다. 크지 않은 키에 가지가 많은 이 나무는 매화말발도리다. 형제 중에 말발도리라는 식물이 있는데, 이 나무는 꽃이 매화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다른 식물들은 대부분 영양분 많은 부엽토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데, 특이하게도 매화말발도리는 바위틈에 터전을 잡는다. 식물 자체가 강건해서 고생을 자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꽃은 대를 물려가며 척박한 바위틈을 골라 뿌리를 내린다. 요즘은 자연에서 보기가 힘들지만, 풍란이나 석곡 같은 착생난들은 아예 뿌리를 바위나 나무에 붙이고 살아간다. 갯씀바귀 같은 식물은 바닷가 모래에 뿌리를 내린다. 여름 뙤약볕도 이들의 삶을 멈추게 하진 못한다. 꽃들은 모두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