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들꽃이야기/꽃의 민낯 (28)
들꽃소리
방송이 미워요 요즘 방송국 다큐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가 약초꾼 이야기다. 험준한 산 속을 헤매며 귀한 약초를 찾는 모습이 힘들지만 보람차 보인다. 그 약초꾼들 중에는 특별한 약초만 전문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다양한 산야초를 두루 채취하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겨우살이만 전문으로 채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방영된 것을 본적도 있다. 산야초를 채취하는 장면이 방송을 자주 타다보니, 일반인들 중에서도 반 취미 삼아 주말이나 휴일에 약초를 캐러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중에는 아예 동호회를 결성해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자연을 벗하며 즐기는 것이 뭐가 나쁘겠냐마는, 거기에는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약초들 중에는 보호해야 할 식물들이 제법 많다는 점이다. 겨우살이 중에서도 꼬리..
매뉴얼 그까짓 거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일인데 늘 소홀한 것이 있다. 매뉴얼을 숙지하는 일이다. 사진은 카메라라고 하는 기계를 사용해 만들어진다. 그러니 그 기계를 제대로 잘 다루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카메라는 빛을 조절해 필름이나 이미지 센서에 영상이 담기도록 하는 기계다. 카메라에는 빛을 조절하는 3가지 장치가 있다. 조리개, 셔터, 감도가 그것이다. 조리개는 빛이 들어오는 통로의 넓이로, 셔터는 시간으로 빛의 양을 조절한다. 감도는 필름이나 이미지 센서가 빛에 반응하는 민감도를 의미한다. 현재 감도는 ISO라는 국제 규격을 사용하는데, 과거 필름에는 ASA나 DIN 같은 미국 또는 유럽의 규격이 함께 표기되어 있었다. 사진을 촬영하기에 알맞은 적정노..
야생화를 찍는 이유 가끔 사람들로부터 ”왜 야생화 사진을 찍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왜일까? 솔직히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돌이켜보니 대답을 하기는 했던 것 같다. “꽃은 도망가지 않으니까”가 그 대답이었다. 야생화들은 계절마다 자신의 때를 알고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킨다. 그 때를 맞춰 찾아가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그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또 하나 야생화는 까칠하지가 않다.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 인물 촬영은 모델과의 호흡이 대단히 중요하다. 풍경사진은 시간과 환경이 중요하고, 보도사진은 찰나를 놓치면 안 된다. 물론 야생화 사진도 때와 기다림이 중요하다. 한번 때를 놓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러나 일단 만나면 다른 피사..
사진은 장비다 예술 분야 중 사진처럼 장비 덕을 톡톡히 보는 장르도 드물다. 많은 사진가들이 더 고급스럽고 비싼 장비를 선호한다. 제조회사들 역시 보급기, 중급기, 고급기로 제품을 분류해 은연 중에 자존심을 자극한다. 출사를 나가면 사진 보다 다른 사진가의 카메라에 더 눈이 많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제법 오래 전 필름 카메라가 대세이던 시절, 유명 잡지사에서 사진기자로 있던 한 친구가 경복궁 출사대회에 다녀온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 친구는 말미에 “말로만 듣던 카메라를 오늘 모두 보고 왔네”라며 웃었다. 그날 우리는 명품 카메라 이야기를 나누며 부러움에 잠겼다. 지금도 좋은 카메라나 렌즈를 보면 여전히 탐난다. 그렇다고 그 많은 사진 관련 장비를 모두 구비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주머니 사정이 따라..
촬영에 임하는 자세 우리 야생화 중 많은 수가 키가 작다. 작다 못해 땅바닥에 붙어 있다시피 한 것도 적지 않다. 어떤 꽃은 삼각대를 거는 것조차 불편할 때가 있을 정도다. 그러니 야생화 촬영을 할 때면 온갖 자세가 다 나온다.언젠가 용인의 한 공원을 일 때문에 방문했다. 습관적으로 훑어보다가 그곳 잔디밭에서 꽃이 핀 벼룩나물을 발견했다. 일은 함께 간 후배에게 맡기고 카메라를 꺼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잔디밭에 얼굴을 파묻고 촬영을 시작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제법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엎드리고 쪼그려 앉고 무릎을 꿇고 촬영을 했다.얼마 뒤 후배가 다가와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했어요?”“벼룩나물 촬영했어.”“저기 저 아주머니가 노숙자인줄 알았대요.”“……?”각설하고..
접사는 숨차다 하늘하늘 실바람에 흔들리는 꽃마리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바람이 멎은 순간 다시 파인더에 눈을 들이대고 숨을 참는다. 셔터를 누르려는 찰나 다시 꽃이 흔들린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걸어놓고 벌써 20여분을 그렇게 바람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조금 더 꽉 채워 촬영하려고 1.5크롭바디에 60마크로, 그 사이에 접사링까지 끼우고 꽃과 거의 닿을 만큼 렌즈를 들이 밀었다. 숨을 참고 잠시 기다리다보면 멎을 만도 하지만, 야속한 바람은 꼭 숨이 차 고개를 들면 잦아든다. 셔터를 누르고 나면 뭔가 부족해 다시 구도를 잡고, 또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한 컷 촬영하는 일이 반복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꽃마리의 키가 작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적당히 바람을 막으면 된다. 가방에 트레이싱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