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들꽃이야기/꽃의 민낯 (28)
들꽃소리
개나 소나 찍는 사진(?) 어느 해 봄 가평의 화야산 자락을 헤매고 있었다. 봄 야생화가 많은 곳이라 출사를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동료 사진가와 함께 등산로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야생화를 살피고 있는데, 등산복을 잘 차려 입은 두 중년 여성이 옆을 지나갔다. 미리 와 촬영을 마치고 내려가는 모양새였다. 사실 사람들이 오가는 데서 사진을 촬영하려면 좀 멋쩍다. 그래서 잠시 고개를 들고 숨을 고르는데 스쳐가듯 한 마디가 귀에 꽂혔다. “요즘은 개나 소나 다 사진을 찍어.”꼭 그렇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때는 우리를 보고 하는 소리로 들렸다. 둘 모두 잠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크게 웃었다. “졸지에 개하고 소가 됐네.”사실 요즘처럼 카메라가 대중화된 적이 없다...
대암산 용늪 2008년 7월 4일, 4륜구동 SUV를 새로 장만했다. 소형차로 야생화 촬영을 다니기에 불편한 점이 적지 않아 큰마음 먹고 구입하게 됐다. 오후 4시경 회사에서 차를 인수하고, 다음날 오전 8시 대암산으로 출발했다. 인수 받을 당시 운행기록은 10㎞ 남짓이었다. 수원, 여주를 거치면서 탑승 인원은 4명으로 불어났고, 인제에서 다시 한 명이 늘었다. 여기저기 비가 고인, 포장도 되지 않은 임도를 따라 그렇게 대암산 용늪을 올랐다. 구입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차의 외관은 이미 10년은 탄 듯한 몰골로 변했다. 슬슬 속이 아려왔다. 어렵사리 용늪으로 들어갔다. 1993년인가 용늪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잡지사에서 군과 인제군에 공문을 보내 협조요청을 하고 찾았다. 덕분에 장병들의..
제비꽃은 어려워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www.nature.go.kr)’에 등록된 제비꽃은 60여종이다. 종류가 많다보니 제비꽃만 모은 도감이 나올 정도다. 산이나 들에서 흔하게 만나는 제비꽃이다 보니 처음에는 무턱대고 촬영을 했지만, 나중에 분류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미분류 상태로 잠자고 있는 사진도 적지 않다.제비꽃의 색은 크게 보라색(짙거나 옅은 차이는 있지만), 흰색, 노란색으로 나뉜다. 그 중에는 태백제비꽃이나 남산제비꽃처럼 향이 나는 꽃들도 있다. 함께 촬영을 다니는 사람 중에 제비꽃만 열심히 공부한 분이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촬영 때마다 옆에서 분류를 해주어서 지금 정리해둔 것이 거의 그의 공이다. 제비꽃은 참 아련한 꽃이다. 북방 오랑캐가 쳐들..
찾으면 찾으리라 2008년 여름 서해안의 한 섬을 방문하자는 연락이 왔다. 거기에 아주 오랜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특별한 식물이 있다고 했다. 한적한 해변에 무릎까지 오는 식물들이 둑을 따라 빼곡히 자라고 있었다. ‘개정향풀’을 그렇게 만났다.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개정향풀의 발견 소식은 2005년 뉴스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910년대 일본 학자가 만든 표본 외에는 전해지는 것이 없고, 가까이는 1977년 여름 이영노 박사가 충북 단양에서 꽃이 피지 않은 몇 개체를 촬영해 한국식물도감에 실은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한 번 발견되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개정향풀 군락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무렵 ‘이거 못 찾은 거야? 안 찾은 거야?’하는 의문까지 들었었다..
60마 예찬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각종 장비들의 이름을 줄여 별칭으로 부르는 버릇이 있다. 캐논의 100㎜ 마크로 렌즈는 ‘백마’, 흔히 사용하는 70-200㎜ 줌 렌즈는 ‘백통’, 85㎜ 렌즈는 ‘만두’ 등으로 부른다. 필자가 야생화 촬영 때 주로 사용하는 렌즈는 니콘의 60㎜ 마크로 렌즈다. 이름하여 ‘60마’. 요즘 나온 신형이 아니고, 구형이다. 대략 10년 전에 중고품을 구입해 아직도 잘 쓰고 있다. 야생화 사진의 거의 대부분이 이 ‘60마’와의 합작품이다.세월에 걸맞게 곳곳에 상처가 나 있고, 함께 따라왔던 UV 필터에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가끔 신형 렌즈의 성능이 궁금해질 때가 있지만, 여전히 생생한 오랜 지기(知己)의 노익장만큼 미더워 보이지 않아 이내 눈길을 돌리고 만다...
지켜야 할 것들 열심을 너무 내다보면 본질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한동안 야생화 촬영을 하면서 발밑을 잊어버렸었다. 마음에 드는 꽃을 발견하면 주변을 살피지 않고 무작정 달려드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결과는 자생지에 남겨진 커다란 발자국과 그 밑에 눌려 버린 또 다른 꽃들의 비명 소리다. 엉덩이나 가슴, 배낭 아래서도 이런 무언의 비명소리는 자주 들린다.한동안 비슷한 실수를 자주했었다. 여전히 깜빡깜빡하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발조심이 생활화되어 가고는 있다. 꽃이 낙엽에 심하게 묻혀 있으면 조심스럽게 걷어내기도 하고, 꽃잎에 솔잎이 떨어져 있으면 들어내기도 한다. 사실 이런 행동조차 반성해야 마땅하다.어떻게 해서든 좋은 그림을 만들고 싶은 것이 사진을 하는 사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그런데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