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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꽃의 민낯

5. 지켜야할 것들

이우형 2015. 12. 4. 15:39



지켜야 할 것들


열심을 너무 내다보면 본질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한동안 야생화 촬영을 하면서 발밑을 잊어버렸었다. 마음에 드는 꽃을 발견하면 주변을 살피지 않고 무작정 달려드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결과는 자생지에 남겨진 커다란 발자국과 그 밑에 눌려 버린 또 다른 꽃들의 비명 소리다. 엉덩이나 가슴, 배낭 아래서도 이런 무언의 비명소리는 자주 들린다.

한동안 비슷한 실수를 자주했었다. 여전히 깜빡깜빡하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발조심이 생활화되어 가고는 있다. 꽃이 낙엽에 심하게 묻혀 있으면 조심스럽게 걷어내기도 하고, 꽃잎에 솔잎이 떨어져 있으면 들어내기도 한다. 사실 이런 행동조차 반성해야 마땅하다.

어떻게 해서든 좋은 그림을 만들고 싶은 것이 사진을 하는 사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그런데 야생화 입장에서는 자기 집안에서 맞은 날벼락이나 다름없다. 야생화를 촬영하는 사람 누구도, 자신이 자생지를 훼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자생지들은 발견되는 즉시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08년인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진 인구가 1,000만명을 넘었단다. 스마트폰 시대니 이제는 전 국민의 사진작가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사진에 입문하면서 피사체에 대한 예절 등 지켜야할 것들을 함께 배웠지만, 지금은 그럴 틈이 없다. 촬영 즉시 확인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워버릴 정도로 사진은 간단한 일이 됐다. 쉬워진 만큼 좋은 작품에 대한 경쟁 심리와 차별화 욕구는 더 커졌다. 한 컷 한 컷 애정을 쏟으며 셔터를 누르고 초조히 결과를 기다리던 시절이 끝나버린 것이다. 그 시류에 편승해 함께 조급증에 빠져 버린 스스로가 우습기만 하다.



둥근잎유홍초

Quamoclit coccinea Moench

● 메꽃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

● 화성, 2012년 10월 11일

◎ Camera Tip

Nikon D800, Nikkor 24-70mm, f/2.8, 1/2500초, ISO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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