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소리
26. 낙지다리를 줍다 본문
낙지다리를 줍다
낙지다리라는 식물이 있다. 하천변 등에서 자라는 이 식물은, 좀처럼 보기 어려워 ‘약관심종’으로 보호받는, 제법 귀한 몸이다. 줄기가 올라와 끝에서 여러 가지로 갈라지고, 그 가지를 따라 하얀색 꽃이 줄지어 핀다. 꽃이 지고 나면 낙지의 빨판을 닮은 열매가 달리는데, 그 모습이 낙지의 다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낙지다리라는 지극히 직설적인 이름을 얻었다.
어느 해 여름, 수원과 화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황구지천변에 이 낙지다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 나섰다. 키가 큰 하천 식물들을 헤집고 무릎 높이의 낙지다리를 찾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결국 못 찾았다. 대신 다른 꽃들만 풍성하게 촬영했다.
잊고 살다가 2014년 가을, 집 근처의 한 식물원을 찾았다. 그저 산책이나 하려고 간 길이었는데, 식물원 호숫가에 낯익은 식물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호숫가를 따라 제법 많은 개체가 키 자랑을 하며 모여 있었다. 낙지다리였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카메라를 꺼냈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힌 상태였지만, 일단 촬영하고 내년 꽃 필 무렵에 다시 오면 될 일이었다.
한참을 촬영하고 산책로가 나 있는 습지식물원에 갔다. 거기서는 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데크 난간 바로 옆으로 낙지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찍어 주세요”하고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냥 난간에 카메라 받치고 촬영하면 됐다.
가끔 식물원에서 뜻밖의 횡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연산이면 훨씬 더 좋겠지만, 뭐 어떠랴. 어디에 있던 우리 꽃인 것을. 탐사와 풍경 사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식물원은 꽃을 촬영하는 사진가에게 천국과도 같다.
나문재(열매)
● Suaeda glauca (Bunge) Bunge
● 명아주과의 한해살이풀
● 안산 대부도. 2007년 10월 27일
◎ Camera Tip
FUJI S3Pro, Nikkor 60mm Macro + Tube, f/5.6, 1/60초, ISO160
'들꽃이야기 > 꽃의 민낯' 카테고리의 다른 글
28. 칠보산 연가 (0) | 2016.09.09 |
---|---|
27. 바위솔 실종사건 (0) | 2016.08.26 |
25. 암실과 포토샵 (0) | 2016.07.25 |
24. 사진과 그림 사이 (0) | 2016.07.20 |
23. 있어야 할 곳 (0) | 2016.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