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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꽃의 민낯

26. 낙지다리를 줍다

이우형 2016. 8. 9. 13:28

낙지다리를 줍다

 

 

낙지다리라는 식물이 있다. 하천변 등에서 자라는 이 식물은, 좀처럼 보기 어려워 약관심종으로 보호받는, 제법 귀한 몸이다. 줄기가 올라와 끝에서 여러 가지로 갈라지고, 그 가지를 따라 하얀색 꽃이 줄지어 핀다. 꽃이 지고 나면 낙지의 빨판을 닮은 열매가 달리는데, 그 모습이 낙지의 다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낙지다리라는 지극히 직설적인 이름을 얻었다.

어느 해 여름, 수원과 화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황구지천변에 이 낙지다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 나섰다. 키가 큰 하천 식물들을 헤집고 무릎 높이의 낙지다리를 찾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결국 못 찾았다. 대신 다른 꽃들만 풍성하게 촬영했다.

잊고 살다가 2014년 가을, 집 근처의 한 식물원을 찾았다. 그저 산책이나 하려고 간 길이었는데, 식물원 호숫가에 낯익은 식물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호숫가를 따라 제법 많은 개체가 키 자랑을 하며 모여 있었다. 낙지다리였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카메라를 꺼냈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힌 상태였지만, 일단 촬영하고 내년 꽃 필 무렵에 다시 오면 될 일이었다.

한참을 촬영하고 산책로가 나 있는 습지식물원에 갔다. 거기서는 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데크 난간 바로 옆으로 낙지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찍어 주세요하고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냥 난간에 카메라 받치고 촬영하면 됐다.

가끔 식물원에서 뜻밖의 횡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연산이면 훨씬 더 좋겠지만, 뭐 어떠랴. 어디에 있던 우리 꽃인 것을. 탐사와 풍경 사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식물원은 꽃을 촬영하는 사진가에게 천국과도 같다.

 

 


나문재(열매)

Suaeda glauca (Bunge) Bunge

명아주과의 한해살이풀

안산 대부도. 20071027

Camera Tip

FUJI S3Pro, Nikkor 60mm Macro + Tube, f/5.6, 1/60, ISO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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