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야생화 탐사 (39)
들꽃소리
접사는 숨차다 하늘하늘 실바람에 흔들리는 꽃마리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바람이 멎은 순간 다시 파인더에 눈을 들이대고 숨을 참는다. 셔터를 누르려는 찰나 다시 꽃이 흔들린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걸어놓고 벌써 20여분을 그렇게 바람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조금 더 꽉 채워 촬영하려고 1.5크롭바디에 60마크로, 그 사이에 접사링까지 끼우고 꽃과 거의 닿을 만큼 렌즈를 들이 밀었다. 숨을 참고 잠시 기다리다보면 멎을 만도 하지만, 야속한 바람은 꼭 숨이 차 고개를 들면 잦아든다. 셔터를 누르고 나면 뭔가 부족해 다시 구도를 잡고, 또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한 컷 촬영하는 일이 반복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꽃마리의 키가 작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적당히 바람을 막으면 된다. 가방에 트레이싱지나..
애기송이풀[Pedicularis ishidoyana Koidz. & Ohwi] -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종이다. 다른 이름으로 천마송이풀이 있는데, 이는 개성의 천마산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자생지가 국내에 한 두 곳 정도로 알려졌지만, 최근 가평, 연천, 횡성, 경주, 제천, 거제 등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경기도 가평의 한 계곡을 찾은 것은 4월 말이었다. 맑고 화창한 날씨와 따뜻한 햇살 탓에 기분은 상쾌했다. 목표는 애기송이풀이었다. 애기송이풀은 멸종위기 야생생물2급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힌트는 이곳에서 애기송이풀을 발견했다는 사람이 올린 한 장의 풍경사진이었다. 어쨌거나 그 사진으로 대략의 위치를 알 수 있었고, 인근을 헤맨 끝에 자생지를 발견했다. ..
개나 소나 찍는 사진(?) 어느 해 봄 가평의 화야산 자락을 헤매고 있었다. 봄 야생화가 많은 곳이라 출사를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동료 사진가와 함께 등산로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야생화를 살피고 있는데, 등산복을 잘 차려 입은 두 중년 여성이 옆을 지나갔다. 미리 와 촬영을 마치고 내려가는 모양새였다. 사실 사람들이 오가는 데서 사진을 촬영하려면 좀 멋쩍다. 그래서 잠시 고개를 들고 숨을 고르는데 스쳐가듯 한 마디가 귀에 꽂혔다. “요즘은 개나 소나 다 사진을 찍어.”꼭 그렇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때는 우리를 보고 하는 소리로 들렸다. 둘 모두 잠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크게 웃었다. “졸지에 개하고 소가 됐네.”사실 요즘처럼 카메라가 대중화된 적이 없다...
순비기나무[Vitex rotundifolia L.f.] - 마편초과의 낙엽활엽 관목으로 바닷가에서 자란다. 해변의 모래 위나 자갈 위에서 줄기를 뻗어 자라며, 바닷물에 닿아도 죽지 않는다. 추위에 견디는 힘도 강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태평양 연안을 따라 다양한 곳에 분포한다. 종자나 삽목 등을 통해 번식이 가능하며, 실제로 내륙에서 삽목을 통해 재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순비기나무를 처음 만난 곳은 경기도 서해안의 한 작은 섬에서였다. 이곳 해안에는 두 종류의 순비기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하나는 원래의 색인 보랏빛 꽃을 피우는 것과 특이하게도 흰색 꽃을 피우는 두 가지였다. 흰색 꽃을 피우는 나무는 잎의 색도 더 엷은 녹색을 띄었다. 너무 쉽게 만나다 보니 흰색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
대암산 용늪 2008년 7월 4일, 4륜구동 SUV를 새로 장만했다. 소형차로 야생화 촬영을 다니기에 불편한 점이 적지 않아 큰마음 먹고 구입하게 됐다. 오후 4시경 회사에서 차를 인수하고, 다음날 오전 8시 대암산으로 출발했다. 인수 받을 당시 운행기록은 10㎞ 남짓이었다. 수원, 여주를 거치면서 탑승 인원은 4명으로 불어났고, 인제에서 다시 한 명이 늘었다. 여기저기 비가 고인, 포장도 되지 않은 임도를 따라 그렇게 대암산 용늪을 올랐다. 구입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차의 외관은 이미 10년은 탄 듯한 몰골로 변했다. 슬슬 속이 아려왔다. 어렵사리 용늪으로 들어갔다. 1993년인가 용늪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잡지사에서 군과 인제군에 공문을 보내 협조요청을 하고 찾았다. 덕분에 장병들의..
제비꽃은 어려워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www.nature.go.kr)’에 등록된 제비꽃은 60여종이다. 종류가 많다보니 제비꽃만 모은 도감이 나올 정도다. 산이나 들에서 흔하게 만나는 제비꽃이다 보니 처음에는 무턱대고 촬영을 했지만, 나중에 분류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미분류 상태로 잠자고 있는 사진도 적지 않다.제비꽃의 색은 크게 보라색(짙거나 옅은 차이는 있지만), 흰색, 노란색으로 나뉜다. 그 중에는 태백제비꽃이나 남산제비꽃처럼 향이 나는 꽃들도 있다. 함께 촬영을 다니는 사람 중에 제비꽃만 열심히 공부한 분이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촬영 때마다 옆에서 분류를 해주어서 지금 정리해둔 것이 거의 그의 공이다. 제비꽃은 참 아련한 꽃이다. 북방 오랑캐가 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