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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전통의 향기

경북 영주 / 소수서원·紹修書院

이우형 2016. 1. 27. 22:47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1542(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처음 설립했다. 주세붕이 회헌(晦軒) 안향(安珦)을 기리고자 그가 어릴 때 공부하던 숙수사 옛터에 문성공묘(文成公廟)란 사당을 세워 위패를 모시고 영정을 봉안한 것이 그 시초다. 이듬해인 1543(중종 38) 이 사당을 기반으로 백운동(白雲洞)서원이 창건됐다. 첫 유생은 3명이었다.

1549(명종 4)에 풍기군수로 내려온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백운동서원을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임금이 직접 서원의 이름과 편액을 써서 내리는 것을 사액(賜額)이라고 하는데, 1550년 명종이 직접 소수(紹修)라고 쓴 현판을 하사했다. 이로써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 됐다.

사액서원이 되면 상당히 많은 특권을 누렸다. 서책은 물론, 노비와 토지 등이 하사됐고, 세금과 군역까지 면제됐다. 당시 지방의 국립교육기관으로 향교(鄕校)가 있었는데, 서원이 크게 성하면서 유생들이 향교를 기피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특히 서원은 조선시대 당쟁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서원의 폐단은 앞서 우저서원을 소개하는 글에서 언급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향교는 요즘의 공립학교, 서원은 사립학교와 같다. 소수서원 자료에는 서원이 세워진 1543년부터 1888년까지 4,000여명의 인재를 배출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소수서원에 봉안된 인물은 최초에 봉안된 회헌 안향과 근재(謹齋) 안축(安軸), 원지(員之) 안보(安輔) 등 고려말기 문신들과 서원을 처음 세운 신재(愼齎) 주세붕(周世鵬) 등이다.

영주시 순흥면에 위치한 소수서원은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풍기에서 부석사를 가는 길목에 있어 오가며 들러보기에는 그만이다. 소수서원과 연이어 옛 선비들의 문화와 생활을 체험해볼 수 있는 선비촌이라는 전통마을이 만들어져 있다. 어느 곳이든 표를 구입하면 두 곳 모두를 둘러볼 수 있다. 선비촌에서는 영화나 드라마도 심심찮게 촬영된다.

사진은 소수서원 입구의 모습이다. 오른쪽의 정자는 경렴정(景濂亭)으로 설립 당시 지어져 서원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는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서원으로 들어서기 바로 전에 있으며, 유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던 공간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