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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소리
사진과 그림 사이 언젠가 여름 오대산 월정사를 찾았을 때다. 가끔 찾는 월정사를,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틈에 끼어 따라갔다. 다양한 사진가들이 모인 온라인 동호회답게 이런저런 피사체들을 잡고 촬영하느라 모두 여념이 없었다. 함께 가기를 꼬드긴 동료와 전나무숲길을 걷고 있는데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한 사진가가 버섯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버섯의 위치가 어딘지 어색했다. 바른말 잘하는 동료가 다가가더니 “이 버섯이 자랄 자리가 아닌데?”라며 유심히 살폈다. 촬영 중이던 사진가는 “저쪽에서 따서 옮겼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의 이야기인 즉, 배경이 좋지 않아 더 좋은 배경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동료는 “자연을 촬영하는 사람이 자연을 함부로 하면 안 되지요”라며 발끈했다..
있어야 할 곳 화창한 봄,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바위 위로 하얀 꽃이 핀 나무를 만나게 된다. 크지 않은 키에 가지가 많은 이 나무는 매화말발도리다. 형제 중에 말발도리라는 식물이 있는데, 이 나무는 꽃이 매화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다른 식물들은 대부분 영양분 많은 부엽토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데, 특이하게도 매화말발도리는 바위틈에 터전을 잡는다. 식물 자체가 강건해서 고생을 자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꽃은 대를 물려가며 척박한 바위틈을 골라 뿌리를 내린다. 요즘은 자연에서 보기가 힘들지만, 풍란이나 석곡 같은 착생난들은 아예 뿌리를 바위나 나무에 붙이고 살아간다. 갯씀바귀 같은 식물은 바닷가 모래에 뿌리를 내린다. 여름 뙤약볕도 이들의 삶을 멈추게 하진 못한다. 꽃들은 모두 자..
장점과 단점 야생화 촬영 때 주로 사용하는 렌즈는 60㎜ 마크로 렌즈다. 표준렌즈 계열인 60㎜ 마크로 렌즈는 실제와 거의 비슷한 원근감과 화각으로 낯설지 않은 사진을 만든다. 들고 다니기 편하고, 어느 정도의 조건만 허락한다면 핸드헬드(handheld)로 접사촬영을 해도 큰 무리가 없다. 단점은 초점거리다. 카메라가 다가가기 힘든 곳의 접사촬영이 어렵다.촬영 때 꼭 챙겨나가는 또 다른 렌즈는 24㎜ 마크로 렌즈다. 광각계열의 이 렌즈는 밝기가 f/1.8이다. 넓은 화각에 원근감, 그리고 접사까지 다용도로 사용하기에 정말 편리하다. 넓은 화각은 피사체 너머 풍경을 적당히 살려 주고, 작은 식물을 크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피사체의 형태가 왜곡되거나 배경이 산만해지는 불편함은 있다. 하지만 이..
길을 잃다 제법 오래전 이야기다. 안면도로 새우란 촬영을 떠났다. 산허리 곳곳에 옹벽이 설치되어 있는 높지 않은 야산이었다. 넓게 닦아 놓은 공터에 차를 세우고 좁은 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새우란 몇 촉과 금난초 몇 촉, 은난초도 눈에 들어왔다. 남쪽에서나 만날 수 있는 옥녀꽃대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산 속에서 보냈다. 풍성한 수확을 얻은 우리는 장소를 옮기기 위해 다시 산을 내려왔다. 길이라고 해야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하나, 그리고 좌우로 갈라진 길 두어 개가 전부였다. 만족감에 가득 찬 하산길은 잠시 후 당황스러움으로 변했다. 길 끝에 높은 옹벽이 떡하니 나타났다. 뛰어내리기에는 높이가 상당했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 길을 더듬고 다른 길로 내려왔다. 역..
백당나무Viburnum opulus var. calvescens (Rehder) H. Hara 수국과 흔하게 혼동하는 꽃이다. 자세히 보면 꽃도 잎도 다르다. 같은 나무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대신, 곤충을 유혹하는 바깥쪽 꽃잎이 꽃줄기 전체에 축구공처럼 동그랗게 피는 것을 '불두화'라고 부른다. 마치 부처님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사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불두화를 검색하면 자생식물은 ‘백당나무(Viburnum opulus var. calvescens (Rehder) H. Hara)’로, 재배식물은 ‘불두화(Viburnum opulus f. hydrangeoides (Nakai) Hara)’로 나온다는 점이다. 묘하게 흐트러지지 않고..
사진 잘 찍는 방법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처럼 카메라가 보편화된 시대에 사진은 오락이나 다름없다. 누구나 간편하게 촬영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공유한다. 가끔은 멋진 사진을 만날 때도 있고, ‘그저 그런 일이 있었구나’ 확인하는 정도의 사진도 있다. 그렇지만 사진을 촬영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은 ‘기왕이면 더 멋진 사진을 찍고 싶다’다. 물어보는 이유도 그래서다.어떤 사람은 “큰 카메라로 찍어야 잘 나오죠?”라고 묻기도 하고, 사진을 보고는 “역시 전문가용 카메라야”라며 지레 짐작하기도 한다. 물론, 고급 카메라는 촬영환경에 맞춰 세세하게 조절하고,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품고 있다. 비싼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과거 필름 카메라는 렌즈..